신석기시대
B.C 5,000년 경 ~ B.C. 1,000년 경을 신석기시대라 하며, 이 시대의 특징은 농경, 목축으로 인한 식량생산과 토기의 사용이라 하겠다.
- 신석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은 황해도 전역에 걸쳐 출토되었으며, 옹진군에서도 개평리 검암동에서 발견되었고, 빗살무늬 토기 파편 등이 출토 되었다.
- 백령면 진촌리 패총은 굴과 섭조개 껍질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석기시대의 맷돌을 비롯 토기 40점, 돌토기 9점, 동물 골편 40점, 돌 어망추 1점 등 90여 종의 유물을 포함하여 도기 및 토기편들이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옹진군에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
B.C 1,000년 경 ~ B.C 300년 경을 청동기시대라 하고, 생활영역을 내륙으로 옮겨 본격적인 농경을 시작했으며 비로소 생활경제체제에 들어갔다.
- 황해도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 및 유적이 발견되었지만 옹진지방에는 아직 청동기시대 후기의 유적 등이 발굴되지 않았으며 다만 지석묘(입석동)주위에서 출토된 토기, 반월형 도기, 마제 석검 등의 유물들이 지석묘의 부장유물 이었으므로 같은 시대 주민들이 살고 있었을 것을 추정하고 있다.
철기시대(초기)
B.C 300년 경 ~ B.C 0년 까지 북으로부터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온 주조된 농기구들이었다.
- 주변의 황해도 각지에서 초기 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유적 및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으나 옹진지방 주변에서는 이 시대의 많은 유적·유물들이 발굴되었을 뿐만 아니라 입석동 지석묘의 군락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토착집단이 청동기시대 이래 자리 잡고 있었으며 BC 3세기를 전후하여 대동강유역의 고조선의 지배에 들어갔다가 BC 2세기부터는 한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